루게릭 요양병원 농구선수 박승일 눈물의 마지막 투병
박승일 공동대표의 프로농구 경력과 투병
박승일(53) 승일희망재단 공동대표가 25일 세상을 떠났다. 변함없는 열정과 투혼으로 농구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그는 프로농구 코치로 활동하다가 루게릭병 진단을 받고 23년간 투병해 왔다. 그는 농구 선수로서의 경력을 쌓은 후, 2002년 울산 모비스에서 프로농구 코치로 일하던 중 병을 앓게 되었다.
박승일 대표는 연세대와 실업팀 기아자동차에서 선수로 활약한 뒤, 프로농구 코치로서도 큰 성과를 이루었지만, 2002년 루게릭병 진단은 그의 삶을 완전히 바뀌게 했다. 이후 23년간 끈질긴 투병 생활을 이어나갔으며, 병마와 싸우면서도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과 희망을 주는 존재로 남았다.
승일희망재단과 박승일의 역할
박승일 대표는 2011년 가수 션(52·한국명 노승환)과 함께 비영리재단 승일희망재단을 설립하여 루게릭병 환우들을 위한 활동을 적극 펼쳤다. 특히 아이스버킷챌린지로 유명한 모금 활동은 루게릭 요양병원의 건립을 목표로 했다.
재단은 루게릭병이라는 희귀 질환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환우와 가족들을 지원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박승일 대표의 이와 같은 헌신은 많은 사람들이 기억할 것이다. 승일희망재단은 박 대표의 뜻을 이어받아 계속해서 사회적 기여를 하겠다고 밝혔다.
- 박승일은 연세대와 기아자동차에서 농구 선수로 활약했다.
- 2002년 울산 모비스 코치로 일하면서 루게릭병 진단을 받았다.
- 2011년 가수 션과 함께 승일희망재단을 설립했다.
루게릭 요양병원 건립과 박승일의 업적
박승일 대표의 가장 큰 공헌 중 하나는 루게릭 요양병원의 건립이다. 그는 루게릭병 환우들을 위한 요양 병원이 필요성을 깊이 느끼고, 아이스버킷챌린지 등의 모금 활동을 통해 병원 건립을 추진했다. 결국 지난해 12월 경기도 용인에서 첫 삽을 뜬 루게릭 요양병원은 올해 말 문을 열 예정이다.
해당 병원은 연면적 4995㎡ 규모로, 지하 2층·지상 4층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병상 76개와 재활치료 시설 등을 갖출 예정이다. 박승일 대표의 이러한 노력은 많은 루게릭병 환우들에게 큰 희망을 안겨주었다.
루게릭병을 알린 박승일
박승일 대표는 루게릭병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을 기울였다. 그의 열정과 헌신은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쳤으며, 대한민국에 루게릭병이라는 질환을 알리고, 환우와 그들의 가족들이 직접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을 모색했다.
이와 같은 활동은 박 대표 개인의 노력이기도 했지만, 그의 주도로 많은 사람들이 루게릭병 환우들을 도와야 한다는 인식을 공유하게 되었다. 박승일 대표의 헌신은 많은 사람들에게 본보기가 되었다.
박승일 공동대표의 장례식 일정
장례식장 | 시간 | 위치 |
분당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 | 발인: 27일 오전 7시 | 3층 10호실 |
박승일 대표의 장례식장은 경기도 분당에 있는 분당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 3층 10호실에 마련되었다. 발인은 27일 오전 7시로 예정되어 있어 많은 사람들이 그의 마지막 길을 함께할 예정이다.
승일희망재단의 미래 계획
박승일 공동대표가 세상을 떠났지만, 승일희망재단은 그의 유지를 받들어 계속해서 활동을 이어나갈 계획이다. 재단은 루게릭병 환우들을 돕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추가적으로 도입하고,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질병의 심각성과 지원의 중요성을 알리고자 할 것이다.
또한, 박 대표의 아이스버킷챌린지와 같은 모금 활동을 계속해서 진행하며, 새로운 모금 전략도 구상 중이다. 박승일 대표의 정신을 이어받은 승일희망재단의 미래는 여전히 밝다.
결론
박승일 대표는 투병과 사회적 기여를 동시에 이뤄낸 위대한 인물이었다. 그의 인생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과 영감을 주었으며, 그의 업적은 많은 루게릭병 환우들에게 희망을 제공하였다. 박승일 대표의 헌신은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