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흥도 밥상에 담긴 한국인의 정

Last Updated :

엄흥도가 단종에게 올린 밥상에 숨은 마음

한국인은 스스로를 '정(情)이 많은 민족'이라 자부한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은 이러한 한국인의 정을 깊이 있게 담아낸 작품이다. 어린 단종은 숙부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강원도 영월 청령포로 유배된다. 이때 마을 사람들은 단종이 삶의 의욕을 잃고 식음을 전폐하자 가장 먼저 그에게 밥을 먹이려 애쓴다. 촌장 엄흥도는 단종이 숟가락을 들도록 끝까지 달래며 먹이려 한다. 이는 밥투정하는 자식을 달래는 부모의 마음과 다르지 않다. 이 장면 덕분에 이 영화는 단순한 권력 다툼의 비정함을 그린 작품이 아니라 한국인의 따뜻한 정을 보여주는 영화로 기억된다.

정은 한국인의 생활방식

사전에서 '정'은 '사물에 접하여 느끼는 마음'이라 정의되지만, 한국인의 일상에서 정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더욱 깊게 형성된다. 오랜 시간 함께하며 쌓이는 감정, 함께 밥을 먹고 서로를 살피며 걱정하는 마음이 바로 정이다.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의 건강을 염려하고 집안 사정을 헤아리며 반찬을 나누는 행동 역시 정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경험이 일상화되면서 정은 한국인의 생활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외국인에게 한국인의 정은 낯설게 느껴지기도 한다. 길거리에서 낯선 외국인에게 기꺼이 도움을 주는 모습은 SNS에서도 자주 화제가 된다. 서툰 한국어로 길을 묻는 이에게 목적지까지 함께 가주거나 차로 데려다주는 일도 흔하다. 식당에서 추가 비용 없이 반찬을 더 내주고 시장에서 물건을 살 때 덤을 얹어주는 모습도 외국인들이 꼽는 한국의 독특한 문화다.

식당 옆자리 군인이 "내 아들 같아서"라며 계산을 대신 해주는 경우도 종종 있다. 왕과 사는 남자에서처럼 같은 공간에 있으면 타인도 곧 한 가족이라고 느끼는 것이다.

한국인의 정은 공동체 의식에서 비롯

한국인의 정은 타인을 나와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 일원으로 바라보는 인식에서 비롯된다. 물론 때로는 지나친 관심으로 비칠 때도 있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나이가 몇 살이냐", "옷이 얇아서 춥지 않냐", "밥은 먹었냐" 등 사생활 침해에 가까운 참견도 서슴지 않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그것이 가족을 대하듯 관심과 배려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게 된다. 한국인에게 정은 논리나 규범을 넘어서는 감정이며, '남'이 아닌 '함께 살아갈 사람'을 향한 돌봄의 표현이다.

정은 한국 문화이자 가치

한국인이 유독 정이 많은 이유는 척박한 자연환경과 농경 중심의 생활방식에서 찾을 수 있다. 자원이 부족한 환경에서 서로 의지할 수밖에 없었고, 농사 역시 품앗이와 두레 같은 공동 노동에 기대야 했다. 여기에 인간관계와 도덕을 중시하는 유교사상이 더해지면서 공동체 의식은 더욱 강화되었다. 그 결과 정은 하나의 문화이자 가치로 자리 잡았다. 개인 중심의 삶이 강조되는 현대 사회에서도 정은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힘으로 남아 있다.

조정육 미술평론가

엄흥도 밥상에 담긴 한국인의 정
엄흥도 밥상에 담긴 한국인의 정
엄흥도 밥상에 담긴 한국인의 정 | 뉴스다오 : https://newsdao.kr/27493
경기도 김포시 태장로 789(장기동) 금광하이테크시티 758호(10090) 대표전화 : 031-403-3084 회사명 : (주)프로스
제호 : 뉴스다오 등록번호 : 경기,아 53209 등록일 : 2022-03-23 발행일 : 2022-03-23 발행·편집인 : 김훈철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훈철
뉴스다오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뉴스다오 © newsdao.kr All rights reserved. powered by modoo.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