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원 반도체, 원자층 바꿔 만든다

2차원 반도체를 이루는 원자를 층과 위치에 따라 선택적으로 바꿔, 하나의 얇은 막 안에 반도체와 절연체, 전극 접합 영역을 구현하는 제작 기술이 국내 연구진에 의해 개발됐다. 서로 다른 물질을 한 장씩 옮겨 쌓던 복잡한 공정을 단순화하면서 초미세·저전력 반도체와 3차원 적층형 집적회로로 발전할 가능성을 확인한 성과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기초과학연구원 반데르발스 양자 물질 연구단의 조문호 단장 연구팀이 이른바 ‘모듈형 트랜지스터 제작 기술’을 개발했다고 2026년 10월 16일 밝혔다. 조 단장은 포항공과대학교 석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이번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기초과학연구단 지원 사업으로 수행됐다.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이날 오전 3시 한국 표준시를 기준으로 게재됐다.
서로 다른 물질을 쌓던 기존 방식의 한계
2차원 반도체는 원자층 수준의 얇은 두께에서도 전류의 흐름을 제어할 수 있는 물질이다. 기존 실리콘 반도체가 점점 작아지는 과정에서 맞닥뜨리는 미세화의 한계를 넘어설 차세대 핵심 소재로 주목받는 이유다.
하지만 소재가 얇다는 장점만으로 실제 반도체 소자를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반도체 소자인 트랜지스터를 구성하려면 전류가 흐르는 반도체와 전류를 제어하는 절연막, 전류가 들어오고 나가는 금속 전극이 함께 필요하다. 성질이 다른 이 물질들을 매우 작은 영역에 정밀하게 결합해야 한다.
2차원 반도체는 표면에서 다른 물질과 화학적으로 잘 결합하지 않는 특성이 있다. 이 때문에 절연막을 균일하게 입히기 어렵다. 금속 전극을 반도체에 직접 붙일 경우에는 접촉면이 손상되거나 전기 저항이 커져 소자의 성능이 낮아질 수 있다.
얇은 물질을 한 장씩 옮겨 쌓는 방식도 사용돼 왔지만 공정이 복잡하다는 문제가 있었다. 특히 넓은 면적의 소자를 만들거나 대량 생산 공정으로 확대하는 데에는 제약이 따랐다.
물질을 더하지 않고 원자를 선택적으로 치환
연구진은 서로 다른 물질을 차례로 쌓는 대신, 기존 2차원 반도체를 구성하는 원자를 골라 바꾸는 방법을 고안했다. 필요한 전기적 성질을 지닌 물질을 원하는 층과 위치에서 직접 만들어 내는 방식이다.
실험에는 p형 반도체인 이셀레늄화텅스텐이 사용됐다. 이 물질은 텅스텐 원자층을 셀레늄 원자층이 위와 아래에서 감싸는 구조로 이뤄져 있다. 연구진은 중심에 있는 텅스텐 원자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주변의 셀레늄 원자만 다른 원자로 바꾸면 물질의 전기적 성질이 달라진다는 원리를 활용했다.
연구진은 여러 층으로 구성된 이셀레늄화텅스텐 박막에서 원하는 층과 위치를 정한 뒤 셀레늄 원자를 산소와 황, 텔루륨으로 각각 치환했다. 어떤 원자로 바꾸느냐에 따라 같은 박막 내부에 서로 다른 기능을 지닌 영역이 만들어졌다.
- 셀레늄을 산소로 바꾸면 절연체인 산화텅스텐이 형성됐다.
- 황으로 치환한 영역은 n형 반도체인 이황화텅스텐으로 변환됐다.
- 텔루륨으로 바꾼 부분은 전기가 잘 통하는 준금속인 이텔루륨화텅스텐이 됐다.
하나의 박막을 그대로 둔 채 일부 원자만 바꾸는 방식으로 절연체와 반도체, 준금속을 필요한 곳에 나눠 구현한 것이다.
0.7나노미터 두께로 반응 범위 제어
원자 치환 반응이 원하지 않는 층까지 번지지 않도록 제어하는 것이 핵심 과제였다. 연구진은 박막의 층과 층 사이에 존재하는 미세한 틈이 반응 원자의 이동을 가로막는 장벽으로 작용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반응 온도와 반응 기체의 압력을 조절해 화학반응이 다음 층으로 넘어가는 정도를 통제했다. 이를 통해 약 0.7나노미터 두께의 원자층 단위로 물질을 변환하는 데 성공했다. 나노미터는 10억분의 1미터를 뜻한다.
수직 방향의 층뿐 아니라 박막의 평면에서도 바꿀 위치를 선택할 수 있었다. 연구진은 반도체 공정용 마스크를 이용해 원하는 부분에서만 원자 치환 반응이 일어나도록 했다. 그 결과 층과 위치를 함께 골라 물질의 성질을 바꾸는 제작 방식이 구현됐다.
한 박막에 트랜지스터 핵심 기능 집약
연구진은 개발한 기술을 이용해 하나의 박막에 반도체와 절연막, 준금속 전극 접합층을 갖춘 모듈형 트랜지스터를 만들었다. 반도체 영역에는 이셀레늄화텅스텐, 절연막에는 산화텅스텐, 전극과 반도체를 연결하는 접합층에는 이텔루륨화텅스텐이 적용됐다.
준금속 접합층을 사용하자 금속 전극에서 반도체로 전하가 이동할 때 넘어야 하는 에너지 장벽은 35.5밀리전자볼트까지 낮아졌다. 이는 금속 전극을 반도체에 직접 붙였을 때와 비교해 약 3분의 1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전하가 넘어야 할 장벽을 낮추면 전극과 반도체 사이에서 전류가 이동할 때 생기는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이번 실험에서는 원자 치환으로 만든 준금속 접합층이 금속 전극과 반도체를 직접 접촉시키는 방식의 한계를 줄이는 역할을 했다.
이론적 최솟값에 가까운 전압 성능
제작된 트랜지스터는 낮은 전압으로 전류를 제어하는 성능도 보였다. 전류의 크기를 10배 바꾸는 데 필요한 게이트 전압 변화량은 61.3밀리볼트로 측정됐다. 상온에서 기존 방식의 트랜지스터가 도달할 수 있는 이론적 최솟값인 약 60밀리볼트에 가까운 수치다.
트랜지스터가 켜졌을 때와 꺼졌을 때 흐르는 전류의 비율은 1000만 배 이상이었다. 전류가 흘러야 하는 상태와 차단돼야 하는 상태를 뚜렷하게 구분하는 성능을 확인한 것이다.
산화텅스텐 절연막의 등가산화막두께는 1나노미터 미만으로 나타났다. 등가산화막두께는 절연막의 전기적 성능을 두께로 환산한 지표다. 연구진은 국제 반도체 로드맵에서 제시한 초미세 소자의 핵심 성능 목표 수준을 달성했다고 설명했다.
1볼트 인버터와 적층 회로 가능성
연구진은 개별 트랜지스터 제작에 그치지 않고 p형과 n형 트랜지스터를 수직으로 쌓은 상보형 인버터도 제작했다. 인버터는 입력된 전기 신호를 반대 상태로 바꾸는 회로다.
이번에 제작한 인버터는 1볼트의 낮은 전압에서도 신호를 반전시켰다. 서로 다른 기능의 트랜지스터를 수직으로 배치해 작동시켰다는 점에서 이번 기술을 적층형 집적회로로 확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확인됐다.
연구진은 앞으로 원자 치환 기술을 다양한 2차원 반도체 소재에 적용하고, 웨이퍼 크기의 대면적 공정으로 발전시키는 연구를 이어갈 계획이다. 아울러 3차원 적층형 집적회로를 비롯한 차세대 초미세·저전력 반도체 기술에 적용할 수 있는지도 탐색한다.
조문호 단장은 이번 성과가 원자 단위 물질 조작이라는 기초 물질과학의 방법을 현대 반도체 기술에 접목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초저전력·초미세 반도체뿐 아니라 차세대 적층형 반도체 소자 기술로도 확장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이번 연구를 기초과학이 차세대 국가 전략기술인 반도체 분야의 난제를 풀고 새로운 공정 방식을 제시한 사례로 평가했다. 원천기술이 국내 산업 경쟁력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기초·원천 연구 지원을 지속한다는 방침도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