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호 기상캐스터 별세 김동완의 마지막 이야기
김동완의 생애
김동완 전 기상청 기상통보관은 1934년 경북 김천에서 태어나, 대구공고를 졸업한 후 서울대학교 사범대에 진학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우연히 본 국립중앙관상대 국립기상기술원 양성생 모집 공고에 지원하게 되었고, 1959년 기상기술원 양성소를 수료하여 김포국제공항과 부산 수영비행장 측후소에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서울의 관상대 예보관으로 일하면서 퇴근 후에도 예보 적중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한밤중에 하늘을 관측하곤 했습니다. 이러한 열정 때문에 부인에게 바람을 피우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은 일화도 있습니다.
기상 캐스터로서의 첫 발걸음
김동완 전 통보관은 1967년 중앙관상대에서 기상 보고를 시작하게 됩니다. KBS 라디오의 어업 기상통보관으로 활동을 시작하면서 청취자들에게 단순한 기상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닌, 일상 생활 속에서 활용할 수 있는 날씨 정보를 제공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체감온도와 같은 용어를 처음 도입하고, 청취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표현을 사용하여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기상청 근무를 하면서도 연탄 배달과 택시 몰기 등 다양한 부업을 병행하였다는 일화는 그의 성실한 삶을 보여줍니다.
- 경북 김천 출생
- 서울대 사범대 지원하던 중 국립기상기술원 지원
- 김포국제공항과 부산 수영비행장 근무
- 서울 관상대 예보관
청취자 중심의 방송 혁신
기상 보고 방송은 비인기 방송으로, 청취자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김 전 통보관은 이런 상황을 변화시키기 위해 청취자들이 귀 기울일 수 있는 방송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그는 날씨와 일상생활을 연결 짓는 표현을 사용하였고, "여우가 시집가는 날"이나 "파리가 조는 듯한 더위"와 같은 표현들은 청취자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날씨 방송은 청취자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게 되었으며, 김 전 통보관은 그의 독창적인 방송 스타일로 인해 큰 인정과 사랑을 받았습니다.
기상청 통보관 제도의 시작
기상청에 원래 '통보관'이라는 직책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방송국에서 김 전 통보관을 '통보관'이라 부르기 시작하면서, 이후 기상청에 공식적으로 '기상통보관'이라는 직책이 생겼습니다. 이는 김 전 통보관의 영향력이 얼마나 컸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1982년 MBC로 자리를 옮긴 김 전 통보관은 1997년까지 MBC 보도국에서 일기예보를 담당하게 되었고, 그가 매직을 사용하여 일기도를 설명하던 방식은 많은 사람들에게 큰 호응을 받았습니다.
기상 캐스터로서의 경력
1959년 | 국립기상기술원 양성소 수료 | 서울 관상대 예보관으로 일 시작 |
1967년 | 중앙관상대 기상 보고 시작 | 기상통보관 활동 시작 |
1982년 | MBC 보도국 보도위원 | 일기예보 담당 |
김 전 통보관은 1967년에 기상 보고를 시작하여, 1982년부터 MBC 보도국에서 일기예보를 전달하였습니다. 그의 방송 스타일은 매직을 사용하여 일기도를 그려가며 설명하는 방식으로, 이는 후에 많은 기상 캐스터들에 의해 사용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1997년부터 1999년까지 한국일기예보회장을 지내며 기상예보 분야에서의 영향력을 계속해서 발휘하였습니다.
김동완의 저서와 수상 경력
김 동완 전 통보관은 다양한 저서를 남겼는데, 대표적으로 '날씨 때문에 속상하시죠'(1998)와 '날씨의 신비'(1999) 등이 있습니다. 그는 또한 많은 수상 경력을 가지고 있으며, 1975년 국무총리표창, 1993년 대통령표창을 수상하였습니다. 2010년에는 날씨예보 방송의 토대 구축에 대한 공로로 세계 기상의 날에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훈하였습니다. 그의 업적은 날씨예보 분야에서 큰 영향을 미쳤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인물로 남아 있습니다.
김동완의 정치 경력
김 전 통보관은 2000년에 자민련 소속으로 고향 김천에서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였지만 낙선하였습니다. 비록 정치인으로서의 경력은 짧았지만, 그는 기상 예보 분야에서 쌓은 명성과 신뢰를 바탕으로 새로운 도전을 시도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그의 도전 정신과 끊임없는 열정이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었습니다.
김동완의 마지막 순간
김동완 전 통보관은 2023년 15일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빈소는 서울 강서구 이대서울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되었고, 발인은 17일 오전 7시 30분에 진행되었습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았으며, 그의 업적은 기상예보 분야에서 오랫동안 기억될 것입니다.
김동완의 영향력
김동완 전 통보관은 한국 기상예보 방송의 토대를 만든 인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의 독창적이고 청취자 중심의 방송 방식은 많은 후배 기상 캐스터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또한 그의 저서와 수상 경력은 그가 기상 예보 분야에서 얼마나 큰 업적을 쌓았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는 기상청 통보관 제도의 시작을 알리며, 많은 사람들에게 날씨 정보를 더 쉽게 전달할 수 있는 길을 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