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2025년 3월의 독립운동 선정
3·1운동, 2025년 3월의 독립운동으로 선정
국가보훈부는 일제강점기 최대의 전민족적 독립항쟁인 3·1운동을 2025년 3월의 독립운동으로 선정했다고 28일 공식 발표했습니다. 3·1운동은 1919년 3월 1일 시작되어 우리 민족의 독립 의지를 전 세계에 알린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독립선언서 작성과 민족대표의 만세 시위
3·1운동에 앞서 1919년 1월부터 독립선언서 작성 준비가 진행되었습니다. 당시 종교계와 학생층이 개별적으로 추진하던 독립운동 계획이 통합되어 범국민적 독립운동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었습니다.
3월 1일, 민족대표들은 서울 태화관에 모여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고, 이들은 일본 경찰에 연행되었습니다. 탑골공원에 모인 학생과 군중들은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며 독립만세를 연호했고, 종로 일대에서 대규모 시위 행진을 벌였습니다.
전국적 확산과 일제의 탄압
시위대가 대한문 앞에 이르자 서울 시내는 만세 소리와 함성으로 가득 찼으며, 일부 시위대는 미국영사관과 총독부로 향하는 등 시위 규모가 확대되었습니다. 고종의 국장에 참석했던 여러 지역 인사들이 귀향하여 3·1운동 소식을 전했고, 5월 말까지 전국에서 1700여 차례에 걸쳐 대한독립만세 시위가 이어졌습니다.
일제는 총검을 동원해 시위대를 무자비하게 진압했으며, 많은 시위자가 사망하거나 부상을 입었습니다. 재판에 회부된 이들에게는 사형이 선고되기도 했고, 거액의 손해배상금을 청구하는 등 3·1운동을 무력화하려는 시도를 했습니다.
3·1운동의 역사적 의의
3·1운동은 전국민적, 전민족적 독립운동으로서 이후 다양한 형태의 민족독립운동이 발산되는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또한, 일제의 식민통치 실상을 국제사회에 알리고 한민족의 독립 의지를 전 세계에 보여주어 다른 국가의 민족운동과 독립운동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국민 추천으로 선정된 3월의 독립운동
보훈부는 지난해 4월 23일부터 5월 22일까지 국민 추천을 받아 3월의 독립운동을 선정했습니다. 추천된 독립운동으로는 만민공동회 개최(1898), 안중근 의사 순국(1910), 중광단 조직(1911), 조선산직장려계 사건(1917), 조선국민회 결성(1917), 추산정 만세의거(1919), 북간도 용정 3·13만세 운동(1919), 파리장서 사건(1919), 신민부 성립(1925), 재동경조선인단체협의회 결성(1927) 등이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