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아버지께 전하는 영상편지의 힘

그리운 아버지께 전하는 영상편지의 힘
"아버지 너무 보고 싶어요. 그해 봄 아버지랑 유난히 많이 놀러 다녔던 기억이 지금까지 생생해요. 어서 가라고, 빨리 가라며 손짓하시던 아버지의 모습이 마지막일 줄 몰랐어요. 사는 동안 아버지 생각을 하지 않은 날이 없어요. 어떤 날은 펑펑 눈물이 쏟아져요. 아이를 낳고 키워보니 그때 아버지가 어떤 마음으로 저와 엄마를 보냈을지 마음이 아파요. 우리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사랑해요 아버지."
88세의 심인복 씨는 카메라 앞에 앉아 아버지께 영상편지를 전했다. 말끝마다 떨림이 묻어났고, 촬영 내내 눈물을 닦으며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한 심 씨의 모습은 보는 이들의 마음을 울렸다.
심 씨는 11살 때인 1950년 서울 회현동 자택을 떠나며 납북된 아버지와 헤어졌다. 이후 75년 동안 아버지의 생사를 확인하지 못한 채 살아왔다. 꿈속에서 아버지를 만나 안기는 장면을 반복해서 보며,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고 있다. 만약 아버지가 살아계시다면 올해 107세가 된다.
아이를 키우면서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된 심 씨는 지난 1월 남편과 사별하며 어머니의 고통에도 깊이 공감하게 됐다. 그는 "그곳에도 아버지의 가족이 있었길 바라며, 많이 외롭지 않은 삶을 사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한 "오늘 찍은 영상이 아버지에게 닿지 못하더라도 다른 가족들이 볼 수 있길 바란다"고 전했다.
이 영상편지는 통일부가 진행하는 '2025년 남북 이산가족 영상편지 제작사업'의 일환으로 만들어졌다. 이 사업은 남북 이산가족의 교류를 대비해 기록을 수집·보관하기 위해 2005년부터 시작되어 2024년 말까지 총 2만 7102편의 영상편지를 제작했다. 올해는 2024년 실시한 '제4차 남북 이산가족 실태조사'를 바탕으로 약 1000명의 이산가족을 대상으로 방문 촬영을 진행 중이다.
특히 해외에 거주하는 이산가족을 위해 사전 안내에 따라 직접 촬영한 영상편지를 제출하면 통일부가 편집을 지원하는 시범사업도 시행 중이다.
15년간 영상촬영을 담당한 제작팀 관계자는 "전국을 다니며 많은 이산가족을 만났고, 대부분은 북에 있는 가족의 생사를 알지 못하지만 편지가 전해질 것이라는 희망으로 촬영에 임한다"고 전했다. 또한 "몇 년 전 100세가 넘은 할머니가 높은 계단을 단숨에 오르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며 "모든 가족이 건강히 오래오래 살아 꼭 재회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통일부는 영상편지를 두 개의 이동식 저장매체(USB)에 담아 한 개는 촬영자에게 제공하고, 다른 한 개는 보관 후 북측 가족에게 전달할 예정이다. 현재까지 2008년 남북이 각각 20편씩 주고받은 사례가 유일하다.
또한 통일부는 이산가족들이 영상편지 사업을 더 많이 활용할 수 있도록 방송 매체를 통해 홍보하고 있다. 대외 공개에 동의한 영상편지는 KBS '가요무대'와 라디오 '한민족방송'에서 주기적으로 소개되며, '남북 이산가족찾기' 누리집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통일부는 앞으로도 영상편지 제작을 희망하는 이산가족을 위해 사업을 지속 추진하며, 이산가족 문제 해결에 대한 국내외 공감대 확산에 최선을 다할 계획이다.
제4차 남북 이산가족 실태조사 결과
통일부가 실시한 '제4차 남북 이산가족 실태조사'에 따르면, 이산가족의 약 75%가 북한에 있는 가족의 생사를 확인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산가족들이 가장 원하는 정책은 '전면적 생사 확인'이었다.
이번 조사는 2011년부터 5년 주기로 진행되었으나, 이산가족의 고령화를 고려해 조사 주기를 3년으로 단축했다. 국내외에 거주하는 이산가족찾기 신청자 중 생존자 3만 6017명을 대상으로 개인정보 변경사항과 교류 참여 의사를 조사했다.
조사 결과 국내 신청자의 62.3%가 북한 가족의 생사 확인을 희망했으며, 이어 상봉 희망(57.2%), 서신·영상편지 교환(52.1%), 고향 방문(43.0%) 순이었다. 전반적으로 교류 수요는 감소했으며, 특히 고향 방문 희망은 26.7%포인트 크게 줄었다.
연령대별로는 80대 이상 신청자가 63.6%로 가장 많았고, 거주지는 수도권이 63.3%로 두드러졌다. 해외 거주 신청자 중에서는 80대 이상이 60.9%, 거주 국가는 미국이 75.6%로 가장 많았다.
이산가족의 아픔을 위로하고 국민적 관심을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는 '이산가족 특집방송 제작(52.8%)', '고향 사진·영상 수집 및 전시(44.5%)', '가족사진 복원(34.4%)' 등이 제시됐다.
통일부는 "고령화에 따른 이산가족 교류 형태 선호도 변화를 반영해, 이산가족들의 수요에 부합하는 정책을 추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