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연구진, 세계 최대 박쥐 오가노이드 구축 성공

국내 연구진, 세계 최대 박쥐 오가노이드 구축 성공
국내 바이러스 및 오가노이드 분야 연구진이 신종 및 변종 바이러스와 미래 팬데믹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세계 최대 규모의 박쥐 유래 장기 오가노이드 생체모델 구축에 성공했다. 이번 연구는 감염병 대응 연구에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할 것으로 기대된다.
박쥐 유래 오가노이드로 바이러스 감염 특성 분석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16일, 기초과학연구원(IBS) 한국바이러스기초연구소 최영기 소장과 유전체교정연구단 구본경 단장 공동 연구진이 한국에 서식하는 박쥐에서 유래한 장기 오가노이드를 성공적으로 구축했다고 밝혔다. 이 오가노이드는 바이러스 감염 특성과 면역 반응을 분석할 수 있는 새로운 연구 플랫폼으로 개발되었다.
오가노이드란 성체 및 배아 줄기세포를 실험실 환경에서 분화시켜 장기의 세포 구성과 기능을 모방한 3차원 장기 유사체를 의미한다. 이번 연구는 한국바이러스기초연구소와 유전체교정연구단의 협력으로 이루어졌으며, 연구 결과는 세계 최고 권위의 학술지인 '사이언스'(Science, IF 44.7)에 게재되었다.
박쥐, 고위험 인수공통 바이러스 자연 숙주
감염병의 약 75%는 동물에서 유래하며, 특히 박쥐는 사스코로나-2(SARS-CoV-2), 메르스코로나(MERS-CoV), 에볼라, 니파 등 다수의 고위험 인수공통 바이러스의 자연 숙주로 알려져 있다. 이로 인해 박쥐 유래 신·변종 바이러스는 고위험 전염병이나 팬데믹을 유발할 잠재적 위협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현재 박쥐 유래 바이러스 연구를 위한 생체 모델은 매우 제한적이다. 기존 모델은 일반 세포주나 일부 박쥐 종에서 얻은 단일 장기 조직 오가노이드에 한정되어 다양한 박쥐 종과 조직 특성을 반영하지 못했다.
다양한 박쥐 종과 장기 오가노이드 구축
IBS 연구진은 한국을 포함한 동북아시아 및 유럽에 널리 서식하는 식충성 박쥐인 애기박쥐과 및 관박쥐과 박쥐 5종으로부터 기도, 폐, 신장, 소장 등 다조직 오가노이드 생체 모델을 구축했다. 이를 통해 박쥐 유래 바이러스 연구의 새로운 기반을 마련하고자 했다.
바이러스 감염 및 면역 반응 규명
연구진은 구축한 박쥐 오가노이드를 활용해 코로나 바이러스(SARS-CoV-2, MERS-CoV), 인플루엔자, 한타 등 박쥐 유래 인수공통 바이러스의 특이적 감염 양상과 증식 특성을 규명했다. 고위험 바이러스들은 특정 박쥐 종과 장기에서만 감염 또는 증식하는 경향을 보였으며, 특히 한타바이러스는 박쥐 신장 오가노이드에서 효과적으로 증식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박쥐 오가노이드에 다양한 인수공통 바이러스를 감염시켜 박쥐 종과 장기, 바이러스 종류에 따른 선천성 면역 반응을 정량적으로 분석했다. 동일한 바이러스라도 박쥐 종과 감염된 장기에 따라 면역 반응의 강도와 양상이 뚜렷이 달랐다. 이는 박쥐가 다양한 바이러스에 대해 유연한 방어 메커니즘을 갖고 있음을 시사한다.
바이러스-면역 상호작용 연구 플랫폼 역할
이번 연구는 박쥐 오가노이드가 바이러스와 면역 반응 간 상호작용을 규명할 수 있는 중요한 연구 플랫폼임을 입증했다. 연구진은 야생 박쥐 분변 샘플에서 두 종류의 변종 바이러스를 찾아내 배양 및 분리하는 데도 성공했다. 포유류 오르토레오바이러스(MRV)와 파라믹소바이러스 계열의 샤브 유사 바이러스가 그것이다.
특히 샤브 유사 바이러스는 기존 세포 배양 방식에서는 증식하지 않았으나, 박쥐 오가노이드에서는 효과적으로 증식했다. 이는 박쥐 오가노이드가 실제 박쥐 장기 환경을 매우 유사하게 구현해 기존 세포 모델보다 높은 생리적 재현성과 민감성을 확보했음을 보여준다.
연구진의 기대와 향후 전망
연구를 주도한 김현준 선임연구원은 "이번 플랫폼을 통해 세포주 기반 모델로는 어려웠던 바이러스 분리, 감염 분석, 약물 반응 평가를 한 번에 수행할 수 있게 됐다"며 "자연 숙주에 가까운 환경에서 병원체를 실험할 수 있어 감염병 대응 연구의 정밀성과 실효성을 크게 확장할 것"이라고 밝혔다.
구본경 단장은 "실제 박쥐 장기의 생물학적 환경을 실험실에서 구현한 점이 중요하다"며 "바이러스에 대한 박쥐 조직의 감염 반응을 정량적으로 추적할 수 있어 인수공통감염병 병리 메커니즘 연구에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영기 소장은 "세계 최대 규모의 박쥐 오가노이드는 글로벌 감염병 연구자들에게 표준화된 박쥐 모델을 제공하는 바이오뱅크 자원으로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며 "박쥐 유래 신·변종 바이러스 감시 및 팬데믹 대비에 기여할 핵심 플랫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