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 대통령까지! 드라마틱한 성공 스토리?
이상득의 생애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은 1935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나 포항동지상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코오롱 그룹에 입사하여 샐러리맨 신화를 써 내려간 인물입니다. 이후 1988년부터 정계에 입문하여 13대부터 18대 국회까지 6선을 지냈으며, 동생 이명박 전 대통령과 더불어 '흙수저 신화'의 대표적 인물로 꼽힙니다. 정치 경력에서 그는 국회부의장, 한나라당 원내총무 등 다양한 직책을 역임하며 정치적으로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였습니다.
정치 경력과 영향력
이상득 전 부의장은 IMF 위기 당시 금융개혁 법안 통과를 위해 협조하며 '미스터 위기관리'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또한, 그의 동생 이명박 전 대통령의 대선 당선에 큰 기여를 하며 '상왕'이라는 별명도 얻었습니다. 이후에도 친이명박계를 구축하며 한국 정치사에서 두드러진 역할을 하였습니다. 그의 정치 인생은 공과 사를 명확하게 구분하는 경력으로, 때로는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쓴소리를 망설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 이상득 전 부의장은 코오롱에서 대표이사까지 올랐습니다.
- 1988년 민정당 소속으로 정계에 첫 입문하였습니다.
- 정계에서 18대 국회까지 6선을 지낸 베테랑 정치인입니다.
이명박과의 형제관계
이상득 전 부의장은 동생인 이명박 전 대통령과 매우 가까운 정치적 동반자였습니다. 그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대선에 출마했을 때 핵심 후견인 그룹인 '6인회'를 조직하며 막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이명박 당선 후에도 민감한 현안에 대해서는 조언을 아끼지 않았으며, 때로는 대통령인 동생에게도 쓴 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이유로 인해 '상왕', '만사형통' 등의 부정적 수식어도 함께 얻었습니다.
상왕 논란과 청렴성
이상득 전 부의장에게는 '상왕'이라는 부정적인 별명이 붙기도 했습니다. 이는 모든 일이 '만사형통'으로 불릴 정도로 이상득을 거쳐 해결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여러 정치 관계자들은 이상득 전 부의장이 누구보다도 공과 사를 뚜렷하게 구분한 인물이었다고 회고합니다. 정치적 권력을 얻었을 때에도 개인적인 이익보다는 공익을 우선시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그의 청렴성을 인정받았습니다.
저축은행 스캔들 및 기타 법적 문제
이명박 친형이 구속된 첫 사례 - 저축은행 금품 수수 | 1년 2개월의 옥고 및 1년 3개월의 실형 | MB의 대국민 사과 |
이상득 전 부의장은 19대 총선 불출마 이후 저축은행 스캔들에 연루되어 구속된 최초의 현직 대통령 친형으로 기록되었습니다. 검찰 수사 결과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1년 2개월의 옥고를 치렀고, 포스코그룹 관련 뇌물 수수 혐의로 또다시 1년 3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습니다. 당시 그의 동생인 이명박 전 대통령은 대국민 사과를 할 정도로 이 사건은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이후 그는 잦은 법적 문제로 한쪽 눈이 거의 실명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국회 의장에 대한 희망
국회의장에 대해 이상득은 커다란 교훈과 열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국회에서 얻은 신뢰와 정치 경험으로 인해 그는 국회의장 자리에 오르고자 했으나, 동생의 대통령 당선으로 인해 그의 꿈은 실현될 수 없었습니다. 2009년 그는 정치 2선 후퇴를 선언하며 국회의장 자리를 포기하고 자원외교에 매진하였습니다. 이는 그가 자신의 포부와 목표를 접었음을 의미합니다.
남미 및 아프리카 자원외교
정치적 자리에서 물러난 후, 이상득 전 부의장은 자원외교에 힘을 쏟았습니다. 특히 볼리비아를 비롯한 남미 및 아프리카 여러 국가에 걸쳐 자원 개발 협의를 진행하며 왕성한 외교 활동을 펼쳤습니다. 그는 이러한 활동을 개인적 성과로 강조하였습니다. 리튬 개발 협의를 위해 볼리비아를 다섯 차례나 방문할 정도로 국가의 자원 확보를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하였습니다.
마지막 일화와 가족
이상득 전 부의장의 정치적 여정은 많은 드라마와 연속된 이야기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한 경북 출신 정치인은 그와의 최근 식사 자리에서 "외부 활동을 거의 하지 못하고 있으나 나라 걱정을 잊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이상득 전 부의장의 장례는 가족장 형태로 4일간 치러졌으며, 그의 고향인 경북 포항에서 많은 이들이 그를 그리워하며 그의 빈소를 찾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