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 시집 일기예보 첫 기상캐스터 김...
기상청 기상통보관의 별세
직접 등압선을 그리는 등 일기예보의 토대를 만들어 친근한 예보를 전달한 김동완 전 기상청 기상통보관이 향년 89세로 별세했습니다. 기상청은 15일 김동완 전 통보관이 세상을 떠났다고 공식 발표했습니다. 그의 빈소는 이대서울병원 장례식장 8호실에 마련되었으며, 발인은 오는 17일 오전 7시 30분, 장지는 함백산추모공원으로 정해졌습니다.
초창기 예보 방식
김동완 전 통보관이 일기예보를 하던 초창기에는 기상청 공무원이 예보를 담당했습니다. 당시 뉴스가 끝날 무렵, 앵커가 "지금부터 마이크를 중앙관상대로 옮겨 날씨를 전해드리겠습니다"라고 하면 김 전 통보관이 예보를 진행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당시 기상청에는 '통보관'이라는 직책이 없었으나, 방송국에서 임의로 그의 직책을 '통보관'이라고 부르기 시작하면서 정식 명칭이 되었습니다.
- 김동완 전 통보관은 오늘날 날씨 예보 방송의 토대를 만든 인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 그는 딱딱한 일기예보에서 벗어나 손으로 종이 일기도에 매직펜으로 등압선을 그리며 날씨를 쉽게 전달하려고 노력했습니다.
- 또한 “여우가 시집가는 날”, “파리도 조는 듯한 더위” 등 청취자 귀에 쏙쏙 들어오는 문구를 사용해 예보 전달력을 높였습니다.
김동완 통보관의 노력
김동완 전 통보관은 일기예보를 친근하고 쉽게 전달하려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는 딱딱한 일기예보에서 벗어나 손으로 종이 일기도에 매직펜으로 등압선을 긋는 등 날씨를 쉽게 전달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또한 “여우가 시집가는 날”, “파리도 조는 듯한 더위” 등 청취자 귀에 쏙쏙 들어오는 문구를 사용하여 예보 전달력을 높였습니다. 이처럼 재치 있고 믿을 수 있는 예보를 전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0년 세계 기상의 날에는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기도 했습니다.
김동완 통보관의 습관
김동완 전 통보관은 퇴근 후에도 예보의 적중도가 궁금해져 한밤중에 몰래 집을 나와 하늘을 바라보는 버릇이 생겼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아내로부터 ‘바람피우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는 오보를 줄이는 자신만의 노하우를 밝혔는데, 일기예보가 틀릴 가능성에 대해 예비적으로 대처하는 방식을 사용했습니다.
일기예보에 대한 철학
김동완 전 통보관은 “일기예보가 100% 맞으면 좋겠지만, 인간 능력에 한계가 있어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고 시설과 장비를 확충해도 불가능하다”며 일반인이 날씨 예보에 무한대의 희망을 품고 있지만, 좀 더 성숙한 태도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습니다. 그는 과거 한 인터뷰에서 이러한 철학을 토로하며, 날씨 예보가 과학적이지만 완전무결하지는 않음을 강조했습니다.
방송에서도 생겨난 직책 통보관
김동완 전 통보관이 방송에서 ‘통보관’이라는 직책을 얻은 것은 흥미로운 이야기입니다. 당시 기상청에는 ‘통보관’이라는 공식 직책이 없었으나, 방송국 측에서 처음으로 그를 이렇게 부르기 시작했고 이후 이것이 정식 명칭이 되었습니다. 최초로 이러한 명칭을 사용한 그는 오늘날 날씨 예보 방송의 선구자이자 역사적 인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시청자 친화적 일기예보
김동완 전 통보관은 일기예보를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청취자와 시청자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그는 등압선 그리는 방식 외에도 “여우가 시집가는 날” 같은 문구를 통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설명했습니다. 이 외에도 다양한 시청자 친화적 표현들을 사용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체감온도 개념 소개
김동완 전 통보관은 한국에서 ‘체감온도’라는 개념을 처음 도입한 인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는 실제 온도와는 별개로 사람이 느끼는 체감 온도를 고려한 것으로, 김 전 통보관이 날씨 예보를 더 정확하고, 실생활에 유용하게 만들기 위해 도입한 개념입니다. 오늘날 체감온도는 많은 기상 정보에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최초의 국민훈장 수상
김동완 전 통보관은 2010년 세계 기상의 날에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상한 인물입니다. 이는 그의 날씨 예보에 대한 헌신적이고 혁신적인 노력을 인정받아 수여된 상입니다. 그는 이 훈장을 통해 기상 예보의 중요성과 그의 공로를 공식적으로 인정받았습니다.
인간적 노력 강조
김동완 전 통보관은 날씨 예보가 과학적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지만, 인간적 노력과 직감도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일기예보가 100% 맞을 수는 없지만, 기상청은 항상 최선을 다해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기상청의 노력을 설명했습니다. 그의 이런 철학은 기상청의 여러 후배들에게도 큰 자극이 되었습니다.
유산과 기억
김동완 전 통보관은 일기 예보의 역사를 새로 쓴 인물로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TV나 라디오에서 접하는 일기 예보의 근간을 마련한 그는 기상 예보의 엔터테인먼트 요소를 더해 많은 이들에게 친숙하게 만들었습니다. 그의 유산은 앞으로도 오랜 기간 동안 기상 예보의 중요한 부분으로 남을 것입니다.
마무리 및 후배들에게 미친 영향
김동완 전 통보관은 그의 일생을 통하여 날씨 예보의 중요성을 확립한 인물입니다. 그의 혁신적이며 친근한 예보 방식은 오늘날 TV와 라디오 그리고 다양한 매체에서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는 후배 예보관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주었으며, 그의 유산은 계속해서 기상 예보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할 것입니다.